2009년 12월 31일
방명록
# by | 2009/12/31 00:00 | 트랙백 | 덧글(4)
그가 죽었다.
내 하나 뿐인 연인, 얼마 뒤면 결혼 할 사람이었던 그가 죽어버렸다.
세상이 텅 비어서 아무 것도 남지 않았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는 한 줌의 재가 되었다. 회색빛의 재는 조그마한 상자에 담겨 차가운 곳으로 들어가버렸다. 손 댈 수 조차 없다. 그냥 내가 그 상자를 끌어안고 물 속으로 가라앉고 싶었는데, 아무도 그렇게 하게 놔두지 않았다. 그의 부모는 울면서 그를 잊어가려 노력했고 그의 친구들은 술 한 잔에, 담배 한 개피에 그를 털어버렸지만 나는 그럴 수 없었다. 밥을 먹어도, 잠을 자도 그가 나타났다. 그의 웃는 얼굴, 화내는 얼굴, 기뻐하는 얼굴. 그 어느 것도 포기 할 수 없어서 나는 현실과 꿈의 경계에 걸쳐 살았다. 눈을 감으면 그가 나타나고 눈을 뜨면 내가 있는 곳이 보인다. 이상한 세계였다.
부모님은 걱정했다. 하나뿐인 딸이라고, 정신과에도 무속신앙에도 쓸 수 있는 수라고는 다 써봤지만 나에게는 여전히 그가 보였다. 울고 있는 어머니와 고개 숙인 아버지를 보며 나는 멍하니 앉아있었다. 하고 싶지도 않던 말이 튀어나갔다. 조금이나마 남아있던 부모님에 대한 애정일까-.
'한 달만 시간을 주세요.'
거짓말이다. 한달 정도로 풀릴 일이었다면 나는 그가 죽는 날 이미 그를 잊어버렸을 테니까. 그래도 처음으로 나온 내 목소리에 부모님은 적잖이 안심한 듯 집으로 돌아갔다. 나는 그의 집에 홀로 남았다. 빛이 들어오는게 무서워서 커튼을 쳐버려서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 지도 몰랐다. 째깍째깍 조용한 집 안은 시계 소리만 울렸다. 그의 소파에 앉아서 그가 좋아했던 티비 프로그램을 틀어놓고 멍하니 앉아있었다. 개그 프로그램도 뉴스도 흘러갔지만 기억에는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저 어둠 속에서 홀로 앉아서 이제는 말라버린 눈물 대신 마음으로 울고 있었다. 돌아와줘요 제발, 당신 없는 세상은 너무나도 힘들어요. 계속해서 되뇌이고 되뇌이고 되뇌였다.
언제였을까. 문득 정신이 들어 몸을 일으켰다. 그의 집은 그의 부모가 처리한 덕에 거의 비어있었지만 부엌은 아직 남아있었다. 싱크대로 다가가 문을 열었다. 그는 요리를 좋아했다. 날카로운 칼로 살아있는 생선을 회로 떠줄 때, 그는 기뻐보였다. 나는 피도, 살아있는 생선도 무서워해서 나쁘다고 화를 내고 저 멀리 도망가 눈만 빼꼼히 내밀고 그를 보았다. 그렇게 어리광 부리는 나를 그는 사랑해주었다. 사실은 회 같은거, 너무나도 잘 먹는 주제에.
칼을 꺼냈다. 어둠 속에서 파르라한 빛을 내며 칼이 말을 걸었다. 베어, 베어버려. 그 기분 좋은 울림에 손목에 칼을 가져갔다. 차가운 금속의 느낌이 기분 좋았다. 살짝 힘을 주자 따끔한 느낌이 들면서 붉은 것이 흘러내렸다. 따뜻하고 비리고 살아있는 것. 이 것만 있으면 그도 살았을 텐데. 몇 번이고 몇 번이고 그었다. 따뜻한 것이 점점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점점 기분이 좋아졌다. 눈 앞의 그의 얼굴이, 점점 웃는 얼굴로 바뀌었다. 계속 웃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에 조금씩 천천히 그었다.
어쩐지 그가 뭐라고 말하는 것 같다.
'이리와, 이리와, 이리와.'
아 그렇구나. 그가 나를 부르고 있다. 나는 웃었다. 그가 점점 내게로 가까이 다가왔다. 그가 손을 내밀었다. 언제나처럼 내밀어진 그 손길이 너무 기뻐서 웃었다. 그의 손을 잡았다. 투명한 그의 손은, 마치 예전처럼 따뜻했다. 말라버린 눈물이 흘러내렸다. 바닥과 손목에서는 붉은 빛이 얼룩진 칼과 함께 반짝 반짝 빛이 났다.
기쁘다, 기쁘다, 기쁘다.
이제, 드디어 그와 함께 할 수 있어요. 그렇죠?
# by | 2008/12/01 23:22 | 트랙백
한 남자가 죽었다. 그는 이기적이기로 소문이 나서 가족에게도, 친구에게도 인망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래서인지 그의 장례식장은 상주를 맡고 있는 그의 남동생이 있을 뿐, 다른 사람들은 그림자도 찾기 어려웠다. 적어도 나는 태어나서 이렇게 쓸쓸한 장례식장은 처음이었다. 곡소리 하나 나지 않는 차갑고 쓸쓸한 곳. 조의금을 받는 사람조차 없었다. 빈소로 들어서자 꾸벅꾸벅 졸고 있는 그의 동생과 다 타서 끝만 남은 향만 있었다. 젊어서 죽었기에 상을 오래 치르지 않아 어제 죽었는데도 내일이면 관이 나간다고 한다. 그래서 내키지 않았지만 와보았다. 왠지 이럴 것 같았으니까.
일단은 신발을 벗고 졸고 있는 동생에게 말을 걸었다. 그는 자신이 자고 있던 것을 몰랐는지 내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 잠이 깨었다. 행여라도 침을 흘리지 않았는지 입가를 슥슥 닦아내고는 얼굴이 발개져서 어서오세요, 하고 인사했다. 상가에서 어서오세요 란 인사를 듣는 것은 처음이다. 게다가 그의 동생은 서비스업 알바를 많이 했는지 표정은 여전히 졸려했지만 인사하는 말투와 목소리 만큼은 손님을 대접하는 상냥한 종업원이었다. 점점 더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그에게 의례적인 인사를 건네고 동생군 또한 정신을 차리고 의례적인 대답을 건넸다. 향을 피워도 되냐 물으니 고개를 끄덕인다. 영정 앞으로 가니 웃지 않는 그의 얼굴이 나를 반긴다. 애초에 그의 사진 중에 웃는 얼굴의 사진이 존재하기나 할까. 무채색 빛깔의 그는 더욱 차가워보였다. 향에 불을 붙여 향로에 꽂았다. 매캐한 향 내가 주위를 맴돈다. 그의 영정을 바라보고 있자니 어느새 다가온 동생이 말을 건다. 멋쩍은 얼굴로 이왕 오신거니 식사라도 하고 가시라고 저 쪽으로 가시라고 안내해준다. 어쩔까, 하다가 이왕 온거 라는 기분에 빈소 옆에 마련 된 작은 식당으로 갔다.
그 곳에는 드문드문 사람들이 보였다. 하지만 다른 빈소에 온 사람일뿐 정작 그의 장례식에 온 사람은 나뿐인듯했다. 일하시는 아주머니가 내온 밥과 국은 따뜻했지만 전과 반찬들은 차가웠다. 그다지 맛있다고는 할 수 없는 없는 식사를 하며 함께 나온 소주를 따서 잔에 따랐다. 한 잔 들이키자 알싸한 맛이 입 안에 좍 퍼진다. 전을 입에 하나 넣고 죽은 그에 대해 생각했다. 오늘은 그의 날이니까, 그에 대해 생각하기로 했다.
그를 처음 본건 대학때였다. 그는 신입생때부터 이미 무리에서 벗어나있었다. 자기밖에 모르는 놈, 차가운 사람. 그의 평판은 신입생이라기에는 너무나도 좋지 않았다. 이제 막 들어온 그의 나쁜 소문이 그리도 빨리 퍼지게 된 것에는 그의 고등학교 선배라던 한 학년 위 선배 덕도 있을 것이다. 그는 그를 볼때마다 이렇게 말했다. '어떻게 저런 놈이 세상에 존재하는지 정말 모르겠다.'
나는 그와 동기였다. 하지만 딱히 과 생활에 관심이 있진 않았다. 그저 미성년자와 시간 맞춰 학교가는 고등학교 생활에서 막 벗어난 철없는 애였을 뿐이다. 신입생이라는 것을 믿고 수업을 빼먹고 놀러다니기 일쑤였던 지라 수업을 잘 듣는 그와 마주칠 일은 거의 없었다. 정작 그를 마주하게 된 것은 군대를 다녀와 복학한 후였다. 그는 시력이 나빠 공익이라 하였다. 그래서인지 군대를 다녀온 이후에는 그를 무시하는 풍조가 더욱 생겼다. 외려 선배들은 다행이라 했다. 군대에서 저런 사람을 만나면 반 죽여놨을 거라고. 그저 이야기 였을 뿐이였지만은-.
군대를 다녀온 후 구멍 난 학점을 메우기 위해 필사적으로 수업을 들었다. 그러다보니 그와 마주칠 일도 많았고 그와 같은 조로 발표를 하는 일도 잦았다. 처음 마주하게 된 그는 소문대로 이기적인 듯 했다. 자신의 학점을 위해서라면 다른 사람의 의견을 무시하고 자신의 의견을 밀고나갔다. 그리고 남이 하는 이야기도 쉽게 귀담아 듣지 않았다. 말투 하나하나가 차갑고 가시가 박혀있는 듯해서 다른 학생들은 그와 말하기를 꺼려했다. 그나마 복학한 동기라는 이유로 선배나 후배에게 떠밀려 내가 대표로 이야기 하는 일이 일쑤였다. 소문만큼이나 그는 이기적인 모습으로 나를 괴롭혔다. 그런데 그런 그를 달리 보게 된 일이 생겼다.
어떤 수업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어떤 발표를 하게 되었다. 발표 주제에 대해 논의하기로 해서 모인 우리들은 그의 차가운 언행에 제대로 된 결론도 못내고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다. 그는 후배인 여학생 하나를 울려놓고도 아무렇지도 않게 책을 정리해 도서관을 나서고 있었다. 그 모습에 울화가 치밀면서도 어떻게든 발표를 해야하니까 라는 생각에 자판기에서 캔커피 하나를 빼들고 그에게 달려갔다.
그는 내가 내민 캔커피를 마치 독극물이라도 되는 것 처럼 바라보았다. 나는 애써 웃으며 마시라고 따서 그에게 건네주었다. 그는 잠시 나를 바라보더니 독극물은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받아들었다. 그 것을 계기로 나는 조심조심 그에게 이야기 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런 말투는 심하지 않느냐, 그 아이를 울린 건 좀 너무했다. 그는 아무 말 없이 내 얘기를 들었다. 한참 동안 농담 등을 섞어 말한 장황한 내 이야기에 그는 대답했다.
'알았어.'
그 한마디만 남기고 그는 뒤돌아서 가버렸다. 빈 캔은 내 손에 쥐어주고. 어차피 그닥 달라지지 않겠지만 그래도 들어준게 어디냐, 란 생각에 나도 집으로 돌아갔다. 그 뒤에 모인 조모임에서 놀랍게도 그는 조금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었다. 다른 사람들은 눈치 채지 못했지만 그를 자주 보고 관찰하던 나는 알 수 있었다. 남의 말에 딴지를 거는 것도, 차갑게 말하는 것도 조금씩 줄어있었다. 적어도 내가 이야기 할 동안은 그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모임이 끝나고 나가는 그의 등 뒤에다가 고마워, 라고 인사했다. 그는 잠시 멈칫하는가 싶더니 이내 나가버렸다. 다른 조원들은 뭐가 고맙냐며 나에게 아우성이었지만, 그때야 알았다.
그는 이기적이기보다도 의사소통이 서툴렀을 뿐이란 걸.
그 후에, 그를 달라진 시선으로 보게 된 나는 재밌는 것을 많이 보았다. 이기적이라는 이야기 아래 감춰진 그는 생각보다 괜찮은 사람이었다. 과의 여자아이가 자료를 구하지 못해 쩔쩔매고 있을 때 아무도 모르게 학회실에 자료를 가져다 둔 것도 그이며, 억지로 참석하게 된 술자리에서도 술은 마시지 않았지만 취해서 고주망태가 된 선배들은 집에 보낸 것도 그였다. 하지만 아무도 몰랐다. 그는 말하지 않았고 그런 것을 안 나도 말하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그는 끝내 졸업할 때까지 이기적인 사람이라는 전설이 되었다.
졸업 한 후 취직한 회사에서도 무슨 불운인지 그의 험담을 하던 선배와도 같은 곳에 취직이 되었다. 당연히 회사 내로 나쁜 소문은 빨리 퍼져나갔고 그는 다시 외톨이가 되었다. 그래서 이렇게 죽어버렸는데도 아무도 오지 않은 거다. 그저 의례상 상사와 동기가 다녀갔겠지만 꽂혀진 향 하나가 다 타들어갈 때까지 머무른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이다.
다시 소주를 한 잔 따라 입에 털어넣었다. 그는 얼간이다. 자료가 없어 쩔쩔매던 여후배를 위해 자료를 가져다주었으면서도 내가 가져다 준 것 처럼 생색을 내고 결국 그 여후배랑 사귀었어도, 술 마신 다음날 선배들에게 네가 데려다줬지? 라며 그가 아닐 거라며 나에게 온갖 칭찬을 해주며 그에게는 욕 밖에 돌아가지 않은 것을 알면서도 그는 끝내 내게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정말로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이야기 들을 만한 것은 나였다.
단지 그와 내가 다른 것은 그는 자신을 포장하는 법을 몰랐고 나는 나를 포장하는 법을 너무나 잘 알았단 것이다. 그는 그저 바보에다가 멍청이었던 것뿐이다. 왠지 모를 짜증에 반찬에는 손도 안대고 술만 입에 넣었다. 소주 한 병을 비우고서야 나는 그 곳을 나왔다. 나오기 전 돌아본 빈소는 여전히 쓸쓸했다. 내가 꽂아놓은 향은 아까처럼 끝만 남은 채 조금씩 타들어가고 있고 그의 동생은 여전히 졸고 있었다. 웃지 않는 그의 영정이 나를 비난 하는 듯 했다. 네가 여기에 왜 온거야. 정말로 그라면 그런 소리는 절대 하지 않았겠지만.
그의 동생도, 그의 부고를 전해준 이도 그가 왜 죽었는지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다. 하지만 그를, 차에 치인 그를 119에 신고한 나만은 알고 있다.
그는, 지나가던 길고양이를 구하다가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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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터디도 하고 있어서 거기서 쓰는 글도 함께 간간이 올라올듯 합니다: )
주제 자체는 그냥 일상 속에서 문득 떠오른 것. 마지막 문장이 쓰고 싶어서 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님...ㅋㅋㅋㅋㅋ
내용은 마음에 드는 데 음. 쓰는게 어색한거 같기도 하고요.
글이라면 ㅎㅁ나 ㄴㅁ이 아니더라도 여러가지 글이 쓰고 싶네요. 과제가 힘들면 인간이 이렇게 도피하게 되네요.......ㅠㅠㅠㅠㅠ<<
가든을 제가 도배할지도 몰라요..../질겅 다른 분들 글도 보고 싶네요...../지긋
# by | 2008/11/17 00:11 | 트랙백 | 덧글(2)
"뭐야, 이 병아리는."
아, 나타났다. 우리 회사의 명물 '우수한' 부장. 30대 중반의 젊은 나이에 벌써 부장직 꿰찬 걸로도 유명하지만 특히나 유명한 세 가지가 있었으니 첫째는 연예인 뺨치게 잘생긴 얼굴이요 둘째는 다른 회사에서도 항시 스카웃 대기 중이라는 그 유능한 능력이오 그 마지막은-.
"껍질도 안 벗겨진 애는 왜 데리고 왔어. 여기가 탁아소냐?"
"하하, 부장님 왜 그러세요. 이래뵈도 올해 입사한 애 중에 가장 나은 애에요."
"인사는 커녕 멀뚱하게 서있는 어리버리한 놈이 가장 나은 놈이면 이제 이 회사는 1년 안에 망하겠네."
입만 열면 튀어나오는 저 신랄한 독설이다. 처음에는 잘생긴 얼굴에 넋을 잃고 그 다음에는 그 입에서 쏟아지는 독설들로 정신을 못 차린다지. 하도 쌓아놓은 업적이 대단해서 회사 내에 모르는 사람이 없다. 무려 회장님에게도 '회사가 참 잘 굴러갑니다 회장님이 매일 즐기시는 골프장의 공 처럼요.' 라면서 비꼰 사람이다. 싱글싱글 웃는 얼굴이라지만 대놓고 회장님에게 그런 소리를 하다니, 간덩이가 부었다고 모두 수근수근 거렸지만 능력 하나는 진짜 끝내주는 사람이라서 자르지는 아니 자를 수가 없는 사람이란다. 어쨌거나 이렇게 부장님에 대해서 주구장창 늘어놨지만 제일 중요한 하나가 빠졌다. 그 것이 무엇이냐면 말이다.
"야,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내가 이 나이 이 직위에 애나 돌봐야겠냐?"
오늘부로 이 사람은 내 상사가 되었다는 것이다.
+
아, 그러고보니 내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나는 '명석한' 나이는 27살. 남들처럼 평범하게 군대 다녀오고 학교 마치고 이제 막 사회초년생이 되었다. 어쩌다가 입사원서를 냈는데 떡하니 붙어버려서 나도 놀랐지만 하늘에 별 따기보다 어렵다는 취직난에 이런 대기업에 붙었으니 좋구나 해야겠지. 그래서 오리엔테이션도 열심히 했고 그러다보니 어느새 이번 해의 기대주 이런 타이틀이 붙어있었다. 원치도 않는 타이틀이지만 그 덕에 가장 최전방이자 회사의 꽃이라 할 수 있는 해외영업부로 가게 되었으니 좋은 기회다. -라고 생각했다 이 곳에 오기 전까지.
"이름 명석한? 뭐야 이 촌스런 이름은. 돌 석에 찰 한 해서 찬 돌이냐?"
"아뇨, 밝을 석에 날개 한을 씁니다."
"됐어, 넌 이제 찬돌이다."
부장님 이름도 만만치 않은데, 라고 생각했지만 빠르게 업무 사항에 대해 읊어대는 통에 그 생각은 이내 지워져버리고 말았다. 받아적으려고 했더니 그 것도 못 외우냐 설마 뇌 용량이 누구처럼 2mb인건 아니지? 라며 말해서 그만뒀다. 나보다 약간 작은 그는 계속 무언가를 이야기 하더니 말한대로 해, 라면서 사라져버렸다. 어, 하는 사이에 잡지도 못해서 분주한 사무실 한가운데 덩그러니 놓인 꼴이 되어버렸다. 적어도 내 자리가 어디인지는 알려주면 좋겠는데….
"저기요오."
"아, 네."
"안녕? 초면이지만 내가 선배고 나이도 많으니까 말 놓을래. 괜찮지?"
"예."
갑자기 눈 앞에 나타난 사람은 작고 예쁘장한 여자였다. 목에 걸린 사원신분증을 흘깃 쳐다본 결과 그녀도 이 해외영업부의 사원이란 것을 알게되었다. 그녀는 배실배실 웃더니 이쪽으로 하며 잘 정리 된 책상으로 이끌었다. 텅 빈 책꽂이와 컴퓨터 한 대가 놓여있는 책상은 아마도 내 것인 듯 했고 자리에 앉자 그녀가 응, 여기가 니 자리! 하면서 등을 탁 하고 쳤다. 그러고서도 그녀는 한참 이것저것(회사 근처 맛집이라더가 그런 것들)에 대해 이야기 하더니 저기가 내 자리야 하면서 자리로 가버렸다.
자리에 앉아서 무얼 할까 하다가 일단 가져온 가방에서 스케쥴러를 꺼내 아까 말해준 업무사항을 기억나는 대로 적었다. 끄적끄적 열심히 적는데 뭔가 툭 하고 책상 위로 떨어졌다. 작게 접은 종이에는 이따가 봐요, 라고 적혀있었고 고개를 드니 책상으로 안내해준 여선배가 손을 흔들고 있었다. 쪽지를 바라보다가 다시 곱게 접어 한 쪽에 놓았다. 스케쥴러에 적기를 다시 시작했지만, 역시 마음 한 구석이 찝찝하다.
딱 한가지에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비밀이 하나 있다. 그건 내가 게이라는 것이다. 펜을 입에 물고 새삼 언제부터 였더라, 하고 기억을 더듬어갔다. 아마도 중학교 때부터가 아니었나 싶다. 왜 애들은 섹시 여가수 이런거 나오면 좋아했는데 어렸던 나는 흔히 말하는 '아이돌 오빠'를 좋아했을까나. 여가수가 웨이브 하는 것 보다 '아이돌 오빠'가 손 한번 흔들어주면 가슴이 두근거렸다. 야구 동영상도 보면 서기는 서는데 영 아닌 기분이었다. 성교육을 받았지만 딱히 게이네 하는 생각은 없었다. 그래도 고등학교때 파우더 몇 번 두드리고 와서 분내 풍기면서 좋아해, 하는 여자애보다 같이 운동하고 와서 땀내나는 친구가 덥석 껴안을 때가 더 좋은 걸 보고 진짜 게인가보다 하고 생각했다. 그래도 아직 동정이다. 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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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요 뒤는 말이죠 없네요 오호호호호
첫글을 위해서 묵혀둔 이야기를 꺼내고.......쩜쩜..
이거 그래서 대체....
뒤를 쓸수 있을까여......./지긋
# by | 2008/11/11 21:54 | 잡담 | 트랙백 | 덧글(2)